1685년 바흐는 독일 튀링겐의 작은 도시 아이제나흐(Eisenach)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한 암브로지우스 바흐(Johann Ambrosius Bach)는 아이제나흐 의회에 속한 음악가였으며 바흐는 그의 8번째 막내였다. 바흐 집안은 200년 동안 50명의 음악가를 배출한 음악 가문이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바흐는 음악의 자양분이 가득 찬 환경 속에 있었으며, 바흐를 말할 때 그의 집안이 이야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흐는 9살 때 어머니를, 10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졸지에 고아가 된 바흐는 큰형 요한 크리스토프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크리스토프는 당시 유명한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요한 파헬벨(Johann Pachelbel, 캐논을 작곡한 바로 그 사람)의 제자였다. 바흐의 음악 교육은 큰 형에게서 시작되었고, 악보를 필사해 가며 공부를 한 덕에 많은 대작곡가들의 자양분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의 열정이 어느 정도였나 하면, 라이켄(J. Reiken)의 오르간 연주를 듣기 위해 63km를 걸어갔으며, 또한 유명한 오르가니스트 북스테후데 (D, Buxtehude)의 연주를 듣기 위해 420km를 걸어갈 정도였다. 바흐가 당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로 명성을 얻을 수밖에 없었던 건 이런 교육 환경과 열정 때문이었다.

 

- 학습시대 : 1685년~ 1703년

1685년에 3월21일 아이제나흐에서 태어났다. 1694년에 모친 엘리자베트 사망, 부친 요한 암브로지우스는 발라라 마르가레타 코일과 재혼하였다. 1695년에 부친이 사망, 올도르프로 이주하였다. 1700년 올도르프의 학교를 그만두고 친구인 에르트만과 뤼네부르크로 가서 성가대 대원이 되었다.

 

- 아른슈타트, 뮐하우젠 시대 : 1703년~1708년

 

1703년 작센=바이마르 공국의 요한 에른스트의 궁정악사가 되었다. 8월에 아른슈타트의 신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취임했고 1707년에 뮐하우젠 성 브라지우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채용되었으며 마리아 바르바라와 결혼하였다.

 

- 바이마르 시대 : 1708년~1717년

1714년 바이마르 궁정의 오르가니스트로 직업 연주자의 첫발을 내딛었다. 중요한 오르간 작품 대다수가 이 때 쓰여졌으며, 당시 이탈리아 음악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 쾨텐 시대 : 1717년~1723년

1717년에 인하르트=쾨텐후작 레오폴드의 궁정악장에 임명되었다. 이 시기에는 교회에 속해 있지 않아 굳이 교회 음악을 써야할 필요가 없어 대부분 세속 작품을 썼다. 감정을 묘하게 자극하는 바흐 특유의 음악들은 이러한 세속 작품이다. 특히 기악곡이 쏟아졌는데, 바흐 음악에서 각광받는 대다수 기악곡들이 이때 나왔다.

 

- 라이프치히 시대 : 1723년~1750년

1723(38세) 라이프치히에서 토마스 칸토르의 채용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여 라이프치히로 이주하였다. 바흐는 생애 마지막 27년간을 라이프치히의 교회 음악 책임자로 있었다. 매주일 예배를 위한 작품들과 교회 음악들을 써야 했기 때문에 줄기차게 악보를 써내려갔다. 바흐 작품 목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칸타타(cantata) 80%가 이 때 작곡된 것이며, 수난곡 같은 대규모 교회 음악들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바흐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교회 음악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모든 음악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한 말에서도 알 수 있다. 바흐란 말은 시냇물이란 뜻이지만 베토벤의 말처럼 그는 바다였다. 바로크시대가 바흐가 세상을 떠난 해에 끝나고 있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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